체대입시생에서 공대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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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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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대입시생에서-공대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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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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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적인 활동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여자축구부 활동을 하며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MVP 상도 받았고, 그로 인해 축구부로 유명한 중학교에서 스카웃 제의도 받았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학교 스포츠클럽에서 넷볼이라는 뉴스포츠 운동을 하며 서울시 대회, 전국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했었다.
이렇게 계속 스포츠 팀 활동에 참여하며, 쭉 좋은 성적을 냈기에 자연스럽게 체대입시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더 정확하게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원래 대학에 뜻이 없었다.
나에게 어른이란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는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의 끊임없는 만류에 의해 좌절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대학에 대한 생각이 없었지만 남들이 모두 대학에 간다기에 나도 미리 생각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럼 나는 어떤 대학에 가야 하나? 라는 질문에서 내가 그동안 해온 것들이 있기에 너무나 자연스레 체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체대에서 어떤 것들을 배우는지, 체대를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으니 남들이 다들 간다는 대학에 나도 가야 한다면 체대를 가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빠르다면 빠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체대입시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능날, 나는 좋은 체대에 원서를 낼 수 있는 성적을 받았다. (물론 실기 점수가 뒷받침해줘야 가능하다.)
크게 부푼 기대를 안고, 실기날까지 열심히 운동을 했으나 수술했던 어깨탓에 운동을 한 만큼 기록이 늘지 못했다.
또한, 하필 좋은 성적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하게 하향지원한 사람들이 많았어서 내 입시는 실패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학교 입시원서를 넣던 시점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체대만을 생각했기에 가군, 나군, 다군 모두 체대에 지원했고, 전문대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 옆자리에 계신 선생님이 전문대에 지원을 하지 않는 나를 보시더니 몇 개의 학교를 추천해주셨다.
그 선생님께서 맡으신 과목이 '정보'였기에 추천해주신 모든 학과는 컴퓨터 관련 학과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선생님이 내 은인이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체대입시생이었지만 공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적응하지 못했다.
어느 과목 수업시간에 나는 교수님께서 수업하시는 내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외계어를 들은 것 마냥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당황스럽게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학생들은 나와 달랐다. 교수님의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이는 사람들, 교수님께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했었는데 바로 앞에서 말했던 학생들이 IT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이곳은 나와 어울리지 않고, 내가 있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나는 운동만 하다 우연히 컴퓨터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여기는 이전부터 컴퓨터를 공부했던 사람들이 오는 곳이구나.
학교를 다니는 동안 너무 죽을 맛이었다. 계속해서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하루종일 듣는데 나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우울해져 갔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내 길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 중간에 휴학도 안 하고 무작정 학교를 안 나갔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동대문 야간 도매시장이었다. 지인을 통해 구인구직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바로 찾아가 면접을 보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은... 내 원수가 간다고 해도 도시락 싸서 따라다니며 말릴 것이다.
주 6일을 일하며,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일한다. 공휴일에도 일을 한다.
하지만 월급은? 150만원이다. 4대보험? 생각도 못한다. 복지? 없다.
그렇다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사장님이 좋으신가? 전혀 아니다. 그곳에서는 음주운전과 성희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자랑스럽게 여긴다.
내가 그런 곳에서 8개월을 버텼다. 내가 대학에서 도망쳐온 곳이었기에 여기서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때 포부가 있었다. 여기서 10년 버티고 30살이 되면 나도 여기서 가게를 차릴 것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다. 거기서 10년을 어떻게 버티니 ㅋㅋㅋ
그렇게 버티던 곳에서 나온 이유가 몇 가지가 있었다.
첫 째로는 믿었던 사장님조차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째, 이곳은 너무나 열악하다. 법조차 지키지 않고 나를 하대했다.
셋 째, 이것이 내가 나온 가장 큰 이유였다. 이곳에서는 내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앞서 잠깐 말했지만, 나는 나름대로 일을 배우고 내 것을 차리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8개월 동안 집 지키는 개처럼 가게에서 배우는 것 없이 앉아만 있었다.
이 이유들 때문에 나는 버티고 버티다가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고 나서는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아직도 '내 것을 차리고 싶다.' 라는 생각 때문에 옷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옷과 관련되어 있으며 배울 수 있는 일. 그래서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포토샵 관련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해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었다.
이전에 동대문 도매시장에서는 8개월이나 버텼지만 이곳에서는 3개월만 일하고 그만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서도 배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일을 하더라도 공유하지 않아 똑같은 일을 하게 만드는, 체계적이지 못한 시스템에 굉장히 실망했기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직접 경험해보니, 내가 원하는 대로 배우면서 성장하고 복지가 좋으며, 체계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느꼈다.
모든 것을 포기하며 학교를 거의 때려치우다시피 했는데 다시 돌아가자니 모든 것이 망설여졌다.
1학년 2학기 시점에서는 제대로 휴학원서를 냈지만, 1학기는 학기 중간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던 것이기에 모든 수업의 학점이 F였다.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가면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도 생각해보았었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도 될까? 에 대한 고민으로 또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너무 막 살았던 것이라고 스스로를 여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인터넷에서 하나의 시를 발견하게 된다.
 
📖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 박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의 길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컴컴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그렇다. 내 블로그의 이름은 이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시를 접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걱정이 사라졌다.
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니고, 막 살았던 것이 아니다.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런 시간과 경험이 있었기에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 학교에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 시는 내 좌우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 학교에 연락하고 학기 성적 삭제 라는 방법을 알게 되어 1학년 1학기 성적을 삭제하고 처음부터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은 1월에 제목을 작성했지만 글은 10월에 쓰고 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정말 이 시처럼 되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며 도망쳤고, 거기서 치열하게 살며 배운 것이 있기에 배우고 싶다는 배움의 열망이 생겨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장한다는 개발에 매력을 느껴 개발자를 진로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개발자를 꿈꿀 것이라는 걸 그 누가 알았을까? 나조차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학교로 돌아온 후에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3학년 2학기인 지금, 아직 시험을 보지 않아 2학기 성적 전까지인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은 4점대 이상을 받고 있으며,
성적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다.
또, 학교 안에 있는 개발 전문 동아리 활동에도 참여했었고, 학과 전공 멘토, 학과 학생회, 학과 전공 동아리 회장을 하며 후배들에게 세미나와 스터디 진행도 했었다.
이런 새로운 길이 결국 내가 방황했던 시간들을 통해,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던 것이고,
그렇게 잘못 들어선 어둠의 길에서 배움의 열망이 강하게 생겼기에 더욱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살면서 단 한번도 어떤 것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마음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 배워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배우고 싶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
이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던 키포인트라고 생각한다.